[W+] '데미안' 한 몸에 담아내 완전해진 데미안과 싱클레어

3월 7일 개막한 뮤지컬 '데미안'
배우 성별 관계없이 모두 데미안-싱클레어
진짜 내 얼굴은 무엇인가?

김은정 기자 승인 2020.03.11 19:08 | 최종 수정 2020.03.13 13:42 의견 0

진짜 내 얼굴을 어떤 모습일까. 성별, 이분법 등 세상의 기준을 넘어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있다.

3월 11일 대학로 유플렉스 2관에서는 뮤지컬 ‘데미안’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배우 정인지, 유승현, 전성민, 김바다, 김현진, 김주연 및 이대웅 연출, 오세혁 작가가 참석했다.

‘데미안’은 백 년 넘게 사랑받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로 누군가의 방황을 응원하고 길을 비추어 주는 위대한 소설가의 자전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깊이를 더해가는 대담성과 통찰력으로 전적 인도주의의 이상과 높은 품격의 문체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간 내면의 양면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참된 자아를 찾는 청년의 모습을 그리는 이 작품은 출간 100주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수많은 청년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 중이다. 2020년 3월 무대에서 펼쳐지는 ‘데미안’은 단 두 명의 배우가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되어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독특한 점은 여성과 남성 배우 각 3명의 배우가 6인 6색의 매력을 발산하며 싱클레어와 데미안 두 역할을 모두 번갈아 소화한다는 점이다. 소설 속 캐릭터는 모두 남자이지만, 배우 성별과 관계없이 작품 속 배역을 모두 연기한다는 점은 무대이기에 가능한 새로운 시도다.

이처럼 역할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작품을 설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이대웅 연출은 “’데미안’은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이야기로,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융 박사(스위스의 정신과 의사)를 만난 후 쓴 소설이다. ‘어떤 영향을 받아 이 소설을 썼을까’ 찾아보니 한 자아 안에는 남성-여성성 모두가 있다고 한다. ‘아니마(남성 속 여성성)와 아니무스(여성 속 남성성)가 같이 있는 것 아닌가’ 해서 그 접점을 생각했다. 남자-여자 캐릭터가 아니라 배역 구분 없이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배우 정인지는 “’데미안’ 책을 읽을 때 성별을 지우고 읽었다”고 말했다. “상견례 후 다 같이 융에 대한 수업을 함께 들으며 헤르만 헤세가 어떤 영향을 받아 소설을 썼는지 알게 된 후 다시 책을 접하니 느낌이 달랐다”는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성별이 꼭 필요할까? 세상을 살아가는데 성별은 무기가 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작품을 다르게 대하게 되었다. 이런 부분이 싱클레어를 연기하면서 더 많이 표현되지 않을까 한다. 극에서 외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외치는 이유도 작품을 크게 하나로 봤을 때 중심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대본에 ‘남녀 구분 없이, 양쪽을 다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적어뒀다”는 오세혁 작가는 뮤지컬 ‘데미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관객이 무엇을 찾길 바랐을까. 오 작가는 “소설에서 후반부에 나오는 1차 세계대전 이야기에서 싱클레어가 ‘병사로 끌려온 젊은이들이 죽을 때에야 자기 얼굴이 된다’고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이 슬펐다. 지금 우리도 세상 혹은 집단에서 원하는 표정 하나로 살아가는 것 같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그래야 하는데 기준에 맞추느라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굴에 관한 이야기를 반드시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지금이 신이 지배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거대한 집단이 바라는 얼굴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그는 “그런 분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물론 관객들도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얼굴을 해보자’는 취지로 극본을 썼다. 그래서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배우가 전 캐릭터를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잃어버린 나의 반쪽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찾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3년 전 ‘데미안’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오세혁 작가는 원작을 극화하면 ‘얼굴’에 가장 집중했다고 이야기했다. 소설 후반부의 1차 세계대전을 가장 앞 장면으로 구성한 것은 싱클레어의 얼굴(표정) 변화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오 작가는 “전쟁 속에서 싱클레어는 밖을 보며 계속 얼굴이 공포에 질려있다. 그러다가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향하게 되고 ‘왜 내가 여기 와서, 혼자 있어야 하는가’ 생각하다가 지금까지 성장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한결같았던 데미안을 보며 따라가려고 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는 데미안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데미안’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세상에 맞서는 이야기”라고 표현한 그는 헤르만 헤세에 관한 이야기로 자기 생각을 부연했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집필한 것은 힘들었던 시절 융 박사를 만난 후다. 많은 사랑을 받던 작가 헤르만 헤세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사람에게 비난을 받는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헤세는 융의 치료를 통해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이어져 인류가 되고, 그 안에는 ‘집단적 무의식’이 존재한다. 이것은 성스러움, 악함 어느 것일 수도 있다. 헤르만은 집단의 힘은 개인이 이겨낼 수 있으며, 여정을 떠나면 반드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집단 무의식이 발현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오 작가는 “어느덧 세상은 여성-남성, 국가-국민 등 이분법적 세계가 되었다. 헤세는 그 안에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바탕이 ‘데미안’은 언제 공연하더라도 관객에게 통하는 이유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데미안’은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고전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다른 것을 찾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꾸준하게 이 작품을 갈구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좋은 고전이나 공연도 환영받지 못하는 시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배우 대표로 나선 김현진은 “현재 상황이 가볍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연습실에서부터 손 소독제, 마스크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연습한 적도 있다. 배우와 관객 모두의 건강이 중요하다.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봐주시는 만큼, 무대에 서는 입장에서는 빨리 시국이 안정되어 여러분이 문화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청춘의 교과서’로 꼽히는 ‘데미안’ 뮤지컬은 오는 4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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